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이 가까워짐에 따라, 고등학교 교육의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일정 학점을 이수하면 졸업할 수 있는 제도로, 획일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보다 유연하고 맞춤형 교육과정을 지향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학생의 학습 방식만이 아니라, 교사의 역할 전반에도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한다.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라 교사는 단순한 수업 전달자가 아닌 교육과정 설계자, 학습 조력자, 평가자, 협업자로서 다층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이는 기존 교사상과 명확히 구분된다.
1.교육과정 설계자
고교학점제는 교사를 ‘교육과정 설계자’로 탈바꿈시킨다. 과거에는 정해진 교육과정에 따라 수업을 진행했다면, 앞으로는 학생의 과목 선택과 진로에 기반한 맞춤형 교육과정을 기획해야 한다. 각 교사는 자신의 담당 과목에 대해 기본, 일반, 진로선택 과목으로 나누어 교육 내용을 재구성해야 하며, 수업 분량과 성취기준, 평가 방식 등을 학교 실정에 맞게 조율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교수 행위를 넘어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 전반에 대한 기획과 책임이 교사에게 부여되는 구조로, 교사의 교육과정 이해도와 수업 기획 역량이 매우 중요해졌다.
2.과목 중심의 수업 운영자
교사는 학년 중심이 아닌 과목 중심의 수업 운영자로 역할이 재편된다. 고교학점제 하에서는 학생이 다양한 학년, 다양한 반에서 선택 과목을 수강하기 때문에, 한 교사가 여러 학년의 학생들을 동시에 가르치는 상황이 빈번해진다. 예를 들어, 2학년 학생과 3학년 학생이 함께 ‘심화 국어’를 수강하거나, 전 학년이 혼합되어 ‘심화 수학’이나 ‘생활과 윤리’ 수업에 참여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에 따라 교사는 학생의 수준차와 학습 배경을 고려한 수업 전략을 마련해야 하며, 수업의 내용뿐 아니라 학습자 구성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게 된다. 수업의 탄력성과 교사의 유연한 수업 운영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3. 평가 전문가
고교학점제는 평가에 있어서도 교사의 역할을 재정립한다. 기존에는 일정한 상대평가 기준에 따라 성적을 산출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고교학점제에서는 성취평가제와 연계하여 절대평가 방식이 확대된다. 이로 인해 교사는 학생 개인의 학습 성취 수준을 보다 정밀하게 분석하고, 과정 중심의 평가를 통해 성장을 지원해야 한다. 루브릭 기반의 수행평가, 개별 피드백, 자기 평가 등 다양한 평가 기법이 요구되며, 이는 평가에 대한 전문성과 공정성을 동시에 요구하는 구조이다. 평가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면서도, 학생의 성장 가능성을 최대한 반영하는 평가 방식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서 교사의 전문적 재량권과 책임은 더욱 커졌다.
4. 내외부와의 협력자
고교학점제는 학교 내외부와의 협업을 강조한다. 학교는 모든 과목을 자체 개설할 수 없기 때문에, 인근 학교와의 공동교육과정 운영, 지역 대학 및 기관과의 연계, 온라인 강좌와 연합 수업 운영 등 다각도의 교육 연계망이 요구된다. 이에 따라 교사는 단순한 수업자에서 벗어나, 교육협력자이자 프로그램 운영자, 네트워크 관리자 역할까지 수행해야 한다. 특히 공동교육과정 운영 시, 수업 일정 조정, 학생 이동 관리, 평가 기준의 일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이는 교사 간 협업과 행정적 소통 역량을 필요로 한다. 더불어 교사는 지역 사회와 연계된 진로 체험 활동, 전문인 강사 활용 등 다양한 프로그램 기획에도 참여하게 된다.
5. 연수 체계의 재정비
이러한 역할 전환은 교사의 역량 강화를 위한 연수 체계의 재정비를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안착을 위해 교사 대상의 직무 연수, 수업 공유 플랫폼 운영, 우수 수업 사례 나눔 등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특히 교과별 학점제 적용 사례와 수업 설계 매뉴얼 제공, 성취평가 적용 실습 등이 강조되며, 교사가 실질적으로 수업에 적용할 수 있는 실천 중심의 연수가 점점 더 필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형식적인 연수에서 벗어나, 실제 교육현장의 맥락과 수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한 연수가 더욱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교사 간 수업 나눔과 피드백 문화 조성, 학교 단위의 전문학습공동체 활성화도 병행되어야 할 요소다.
이처럼 고교학점제는 교사의 역할을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방향으로 확장시킨다. 이는 단순한 업무 부담 증가로 해석될 수 있으나, 동시에 교사에게 교육의 본질적 기획자로서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인정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고교학점제가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이러한 새로운 역할 변화에 대한 이해와 준비가 충분히 이뤄져야 하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체계적인 정책적·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